새하얀 도화지에 물드는 즐거움, 피치그레이

 



  • 색색깔의 물감, 도톰하고 손바닥 만한 도화지, 물이 들어있어 누르면 
  • 붓 세척이 가능한 펜 형태의 붓과 작은 수건이 음료와 함께 트레이에 서빙 된다. 
  • 음료를 트레이에서 드러내고 나면 물감을 풀어 색을 낼 수 있는 팔레트가 된다.






학창 시절 미술시간 외에는 구경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던 미술 도구들이다. 

피치 그레이는 음료를 주문하면 수채화를 그릴 수 있는 물감 키트를 서비스로 제공한다.











          





통유리로 되어 있는 카페 내부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새하얀 커튼에 묻은 알록 달록 물감의 흔적이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준다. 창가에 앉아 맞은 편 공원의 푸르름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수채화를 그리며 시간을 보내 본다. 수채화로 그려진 메뉴판도, 다 쓴 물감들로 채워진 라탄 바구니도, 그리고 카운터 옆 보드에 가득 붙어 있는 손님들의 그림들도 아기자기하게 참 예뻤다.





텅 빈 도화지를 보고 있으니, 복잡했던 머릿속도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무얼 그리며 도화지를 채워볼까 생각을 하기에 앞서 가만히 그 쓸모없이 ‘멍 때리는 시간’을 즐겨본다. 

아니, 어쩌면 그 시간이 쓸모 없지 않은, 지친 머릿속의 뇌를 편히 쉴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필요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캐릭터 ‘펭수’를 그려보겠다며 휴대폰 화면에 사진을 띄우고 붓 펜을 들었다. 연한 회색 물감으로 얼굴을 그리고, 노란 부리까지 그렸는데 벌써부터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내 손은 금손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잊고 있었던 사실도 아닌데 뭘 기대했던 건지 혼자 우스워 괜히 킥킥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디에도 보여주지 못할 부끄러운 그림이라도, 하물며 완성되지 않은 대충 그리다 만 그림이라도 그리는 동안의 그 시간이 참 새삼스럽게도 즐거웠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런 시간과는 다른 여유로움이 있었다. 마치 소꿉놀이를 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는 잘 그리지 못하니 미술 시간도 스트레스 뿐이었고 즐긴 적이 없었는데, 놀이라고 생각하니 엉망인 그림도 그저 재미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물감과 붓, 물통과 스케치북 이런 것들이 비싼 것들은 아니지만 매일 즐기는 취미로 가질 만큼 그림에 대한 애정이 깊지도, 그럴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넘치는 것도 아니니 재밌다고 해서 그것들을 집에 갖춰 놓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래서 피치 그레이가 반가웠다. 블루라이트가 번쩍이는 휴대폰 액정 말고, 열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좋았다. 가방을 가볍게, 음료만 시키면 두어시간 쯤은 거뜬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장난감이 딸려 온다.





주문할 때에 추가해서 한 장 더 받아 두 장이었던 도화지 가득 이것저것 그려보고 나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나서 카페를 나서는데 머릿속이 맑아진 것 같았다. 명상이라도 하고 난 것처럼 개운했고, 충분히 광합성을 해서 뽀얗게 잘 마른 빨래처럼 산뜻했다. 언제고 다시, 어쩌면 생각보다 더 자주 찾게 될 것 같은 공간이었다.





공식 인스타그램 : @peach_gray
찾아가는 길 : 서울 송파구 가락로21길 14-1 (송파동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