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믿음직한 가이드, 이어진라운지 심영섭 대표

이어진라운지 인터뷰,  이어진라운지 심영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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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the blank_ X 이어진라운지 심영섭 대표


Q. 사진업에 종사하셨던거죠? 이어진라운지 인스타 피드에 F필름 연남점 포스팅이 여전히 남아있더라고요. 어진님의 삶의 궤적이 궁금해요. 

원래는 신학과를 나와서 성직자의 길을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전도사 사역을 하면서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죠. 일단 사회로 나가보자 마음 먹고 영상 제작과 편집을 독학했고, 이후 교회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교회 안에서 필요한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 교회 방송실에서 장비들을 셋업하고 서포트하던 것이 인연이 되어서 카메라 제조사인 P사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P사에서 ENG 카메라, EFP 카메라, 스위처, 레코더 등 규모가 큰 방송 장비들을 만지면서 방송 시스템 전문가로 3년정도 일했고요. 2014년도에 회사를 나와 카메라 대리점을 차리고 동시에 목동에서 F필름 대리점을 운영했어요. 그러다 이어진플레이스라는 문화 공간을 오픈하고 지금의 이어진라운지까지 오게 되었네요.


Q. 중간중간 모습을 달리하기는 했지만 공간의 역사가 꽤 기네요. 처음엔 신생 공간인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그간 운영하시면서 느끼셨던 소회를 들려주세요.

생각해보면 저는 늘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걸 늘 좋아했어요. 제가 방송 장비 업계에서 좀 더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어려운 장비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쓸 수 있도록 풀어서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었어요. 설명을 잘해주는 게 저의 강점이었던 거죠. F필름 대리점을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카메라라는게 사실 사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잖아요. 카메라를 사러온 그 사람이 너무 궁금했어요. 어떻게 구매하게 되었는지 설레어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게 즐거웠어요. 생각해보면 늘 이야기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Q. 이야기에 대한 갈급함이 소셜 클럽의 형태인 이어진 라운지까지 이어져 온 걸까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사람들이랑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늘 언제나 일 얘기만 할 수 없잖아요. 업무적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더 이상 카메라 설명하는 것에 내 에너지를 허비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또 친구들을 만나면 어느 순간부터 정서의 결이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난 저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인간에 대해 알아가고, 나에 대해 알아가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 거였죠.

 

Q. ‘이어진’이란 네이밍도 인상적이에요. ‘어진’ 이란 단어 자체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 같던데, 이어진이란 단어로 ‘연결’까지 풀어내셨어요. 어떻게 이런 이름을 짓게 되셨나요?

저는 연결된 느낌이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이어진 플레이스를 만들면서 이 공간과 제가 매개체가 되어서 사람들이 문화로 혹은 어떤 관계로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들었을 때 '이어진'이라는 어감도 좋았고요.

 


Q. 그럼 이번엔 ‘나를 찾는’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일부러 시간을 들여 나를 돌아보는 일은 모두에게나 평생 하다 만 숙제 같은 것 아닐까 싶은데요. 쫓기듯 해서는 안되는 일인 걸 알면서도 자연스럽게는 잘 안 되는... 한편으론 ‘나를 찾는 행위’는 소셜클럽에서 타인과 나누기보다는 나 혼자 고독하고 은밀하게 해야 하는 행위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나를 찾는 것과 소셜 클럽(라운지)을 어떻게 연결하시게 된 건가요?

시작은 '나를 찾는 사진관'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였어요. 오래 전 우연히 파주 지지향에서 열린 음악 축제에 이어진 스튜디오가 사이드 프로그램으로 참여하게 됐는데요. 축제를 즐기러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어드리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 프로그램을 ‘나를 찾는 사진관’이라고 네이밍 했고요. 5분 글쓰기, 5분 이야기 나누면서 사진 찍기, 5분 사진 셀렉하기였어요. 그렇게 하루 10시간씩 이틀 동안 80명 정도를 찍었는데 제가 힘든 줄도 모르고 그 일에 완전히 빠져버렸더라고요.


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 제 카메라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심지어 그 이야기가 순도 높은, 진실된 이야기인 거죠. 그때는 정말 심플했어요. ‘내게 가장 의미 있고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물었죠. 한 분이 생각나요. 나이가 서른 중반 정도 되는 여성분이셨거든요. 그런데 10살 때 가족이랑 같이 캠핑을 가서 별을 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우시더라고요, 5분 만에.


그 때 했던 생각이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아니 왜 울지?' 였고, 두 번째는 이 분이 행복했던 순간을 물으니 25년 전의 기억을 소환해냈단 말이에요. ‘그러면 25년이라는 시간 안에서는 행복한 일이 없었던 건가?’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한 거죠. 제 생각엔 그 궁금증은 없다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는데 눌러놨거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해소를 해왔던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이 굉장히 진솔해 진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래서 그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목동 이어진 플레이스 공간 한 켠에 '나를 찾는 사진관'을 오픈했죠.



Q. 단발성 프로그램이 아닌, '나를 찾는 사진관'을 본격적으로 운영하시면서 더 많은 것들을 느끼셨을 거 같아요. 실제로 운영해보니 어떠셨나요? 

저희가 프로그램 시작 전에 40분간 진행된다고 설명은 드리지만 참여하시는 분들은 대게 1시간 20분 정도 이야기하고 가세요. 짧지 않은 시간인데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요. 거기서 '사람들은 누구나 말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를 몸소 체감했죠.


보통 제가 던지는 질문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상대에 대한 궁금증이 집중되는 순간에 순도 높은 말들이 발현 돼요. 상대가 평소에 일상적으로 나누던 이야기와는 다른 결의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본인 스스로가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결국 나를 찾는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지점들이 아닐까 하는 거죠.


Q. 대화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찾게 되는 거군요.

맞아요. 그런데 사실 나를 찾는다는 건 너무 큰 일이에요. 감히 어떻게 몇시간 만에 ‘나를 찾을’ 수 있겠어요. 내 모습의 결정체를 찾는다기보다는 그저 그 순간에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을 뿐이겠죠. 내 안에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면을 오늘 여기 와서 깨달을 수 있다면 그 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Q. ‘나를 찾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사람들은 누구나 외로워 한다고 생각해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세팅 값에는 외로움이나 혹은 슬픔이나 불안함, 억울함이 있죠. 이런 감정들을 스스로 잘 컨트롤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이야기하고 많은 사람이 듣는 방식에 익숙해져있어요. 가정에서는 아빠만, 학교에서는 선생님만, 회사에서는 상사만 심지어 미디어에서도 작은 인터랙션만 있을 뿐 거의 일방적으로 소통하죠. 그런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은 정작 자기 이야기를 못해요.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저는 그게 외로움과 슬픔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요.


‘나를 찾는 것’은 나의 외로움과 슬픔의 근원을 찾아가는 행위예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인지.


Q. 나에게 쓰는 편지 프로그램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신거예요?

'나를 찾는 사진관' 프로그램을 운영하다보니 사진을 찍히는 것이나 1:1로 대화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그래서 중간 단계로 나에게 쓰는 편지를 기획하게 된거죠. 여기서는 짧은 편지를 써서 현재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아젠다를 기록을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고, 그에 따른 적정한 대화들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해요.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 모인 누구라도 이야기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연결하는 거예요. 네이밍은 故신해철님이 91년도에 발표한 노래 제목에서 가져왔는데요. 시대에 상관이 없이 내면의 나와 마주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Q. 이름, 나이, 직업, 성격 같은 것들이 모두 ‘나’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요소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나를 찾는 일과 연결된다는 점이 묘하게 느껴져요. 이 곳에서 그런 것들을 다 떨친 채로 ‘번호’로 불리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익명성이죠. 그 익명성이 이곳에서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관심 갖게 하는 장치가 돼요. 상대의 수많은 조건들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거죠. 저는 다른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에너지 소모가 크니까요. 그런데 여기서는 모두가 기꺼이 그런 일을 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진짜 대화를 나눈다는 게 이런 거구나.' 깨닫는 거죠.


Q. 낯선 사람과 친구보다 깊은 대화를 나눈다는 카피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럴 수 있는 동력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세요?

이것도 익명성이에요. 나의 우울이 주변 사람에게 전이될까봐 이야기 못할 때가 있잖아요. 나에 대한 표면적인 사실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솔직해지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보면 나를 숨기면서 동시에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다 끄집어내고 털고 갈 수 있는 대나무 숲인 거죠. 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적절한 예의를 지켜줘요.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굉장히 조심스럽죠.

 

Q. 기억에 남는 편지, 기억에 남는 포트레이트가 있으세요?

익명성에 기대서야만 털어놓을 수 있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이라 에피소드를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 저 분은 정말 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곳은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인 거예요.

 


Q. 어쩌면 끊임없이 타인과 만나고,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실 것 같아요. 정작 내가 혼자이고 싶을 때조차도 말이에요. 그런 점이 힘드시진 않나요?

그래서 예약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공간을 운영하면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 그런데 그 기다리는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싫었어요. 예약제를 통해 정해진 시간동안 에너지를 쏟고 집에 가서 쉬는거죠. 그리고 사실 이 얘기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래 만나야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짧지만 강렬하게 만나서 한 번에 매력을 보여주고 깔끔하게 끊어내는 거죠. 좀 이상한 사람 같나요. (웃음) 일에 몰입함으로써 생기는 감정의 맺고 끊음에 특화된 것 같아요.  

 

Q. 그런 장점을 잘 버무려서 일에 적용하신 것 같아요. 이어진라운지를 통해 늘 새로운 사람들과 짧은 만남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어진님에게 이어진라운지는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공간을 유지하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한창기 선생님의 말씀인데요. ‘사람이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도 알아야 하는 것 일세.’라고 하셨거든요. 저는 지금 돈을 태우고 있는 중이죠.(웃음) 참 멋진 말이에요. 카메라 대리점을 할 때는 한달 한달 버티는게 고비였어요.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너무 지겨워서요. 저는 지금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완전히는 아니지만 잠시 누군가의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귀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요.


- 인터뷰.  이효진 에디터 / 사진. the blank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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